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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존 마틴, 낭만주의 화풍 이지만 세상의 종말을 그려보았습니다.

by 아옹츄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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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워렌이 그린 존 마틴 1839

 

 

존 마틴은 1789년 7월 노섬벌랜드의 오두막에서 태어났습니다.

 

마틴의 아버지는 펜싱마스터였고 마틴은 그의 넷째 아들로

마틴의 아버지는 마틴에게 전령그림을 배우게 해주기 위해서

뉴캐슬어폰타인에 있는 코치빌더에게 견습생으로 마틴을 보냅니다

 

하지만 전령 그림을 마스터 하기도 전에 임금에 관련된 문제로

갑작스럽게 계약이 취소되어 버렸고

대신 에나멜을 다루었던 화가 찰스무스의 아버지였던 이탈리아 예술가인

보니페이스 무소 밑에서 견습생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견습생 시절을 거쳐서

마틴은 1806년 뉴캐슬어폰타인에서 런던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아홉살 연상의 수잔이라는 짝을 만나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 후,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마틴은 그림 수업을 통해 근근히 돈을 벌었고

도자기나 수채화, 유리 등에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더 괜찮은 돈벌이를 찾던 마틴은

세피아 수채화를 그리면서 수입을 보충해나가기 시작합니다.

 

 

1810년, 마틴의 첫번째 유화작품을 왕립 예술원에 보냈지만,

아쉽게도 그 그림은 걸리지 못했습니다.

칠전팔기 정신으로 1811년 다시 한번 그림을 그려 왕립 아카데미에 보냈고

마틴의 그림은 큰방에 46번으로 걸리게 됩니다.

그 후 마틴은 대형 유화 작품을 계속해서 제작해 나갑니다

풍경화도 그렸지만 성경 구약성서에서 영감을 받아, 성경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마틴은 화풍은 자신이 태어난 노섬벌랜드의 와일드 했던 바위같기도 했고

성경에 나왔던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력도 지니고 있었고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함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1812년 이후 섭정시대에는

홀리하고, 말 그대로 숭고한 느낌의 화풍의 그림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는데

마틴은 왕립 아카데미에서 과정이 마무리 되었을때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역작인 <망각의 물을 찾는 사닥> 을 그리게 됩니다.

이때 그린 망각의 물을 찾는 사닥은 당시 대중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숭고하고' '홀리한' 모든 느낌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서

그동안 무명에 가까웠던 존 마틴의 삶을 180도 바꿔놓게 됩니다

 

 

망각의 물을 찾는 사닥

 

 

<망각의 물을 찾는 사닥> 이라는 작품은 현재 세인트 루이스 미술관에 소장되어있고

유화인 이 작품은, 가장 유명한 영국 낭만주의의 작품 이라고도 불립니다.

 

앞으로 존 마틴이 그릴 웅장하고 큰 스케일의 대형 그림중 첫 작품이기도 한데

 

쏟아져내려오는 폭포수와 깎아내린듯한 절벽 그리고 들쑥날쑥한 산봉우리와

힘겹게 암석을 기어 오르는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있습니다

거대한 대자연에 둘러쌓여있는 한없이 작은 인간의 모습

그림 속 한없이 작은 인간의 모습은

자연의 힘에 함부로 대항할 수 없는 작은 인간의 모습을 그린것과 같습니다.

 

페르시아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가상의 인물 사닥은

기억을 없애는 물인 '망각의 물' 을 찾기 위해서 

술탄에 의해 험난한 여정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술탄은 사닥이 망각의 물을 찾으러 떠났을때

사닥의 아내를 유혹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는 검은 속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알리 없었던 사닥은 술탄에게 받은 명령을 지켜내기 위해서

험난한 폭풍우가 부는 바다와 전염병이 득실거리는 곳, 사악한 지니와

지하의 소용돌이 등 여러가지 괴로운 시련들을 꿋꿋하게 견뎌냅니다

그 와중에 술탄은 죽게 되었고, 사닥이 술탄의 자리를 차지하고 이야기는 마무리가 됩니다

존 마틴이 그린 작품속의 저 남성이 바로 사닥입니다.

사닥이 망각의 물에 다다르기 바로 직전, 투쟁과 독기의 절정에 이르렀을때의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 이 그림을 너무 소장하고 싶어했던 영국의 정치인 

윌리엄 매닝이 구매를 했고

이를 계기로 존 마틴의 이름은 미술계에서 여러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탄탄대로만 걸을 것 같았던 마틴의 인생은

마틴이 이름을 날리며 작품에 몰두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뒤이어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마틴의 어린아들까지

1년이란 짧은 시간내에 모두 사망하게 되면서 잠정적으로 멈추게 됩니다.

 

마틴의 남는 시간에는 마틴이 가장 관심있어했던 원근법이나

건축에 관련된것에 시간을 쏟았습니다

마틴은 화가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메조틴트의 판화가로서도 활동을 했는데

출판업자였던 셉티무스 프로웨트에게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잃어버린 낙원) 의 삽화 작업을 의뢰받기도 했습니다

작품을 의뢰받은 마틴은 책에 들어갈 메조틴트 삽화로

아담 그리고 이브의 타락을 묘사한 삽화를 제작했는데

그 당시 댓가로 2000기니 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후 마틴은 쭉 이어왔던 자신의 작업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도시계획에 몰두를 하다 다시 작업활동에 들어갑니다

 

몇 번의 좌절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마틴은 다시 일어섰고 마침내 1816년 

<태양에게 기브온 위에 가만히 서 있으라고 명령하는 여호수아>

(Joshua Commanding the Sun to Stand Still on Gibeon ) 를 그려냈고

대중의 큰 찬사를 받습니다

Joshua Commanding the Sun to Stand Still on Gibeon&nbsp; 1816

 

마틴의 여러가지 작품들 중 <벨사살의 만찬> 이라는 작품은

좀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벨사살의 만찬 1820

 

이 작품을 공개하기 전 

마틴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5000여명의 사람들이 돈을 지불했는데

이 작품을 마차에 싣고 오스웨스트리를 가로지르는 교차로에서 기차와 마차가 충돌하는 바람에

거의 다 망가졌다고 합니다. 

 

 

1816년 존 마틴은 

현재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되어있는 <신의 분노의 날> 을 포함해

성경속 요한계시록을 주제로 <심판 시리즈> 를 완성하는데 몰두합니다

사람들은 존 마틴 스타일의 핵심요소는 바로 '종말' 이라고 말하는데

성경적이지만 상상력이 가득 담기고 웅장한 마틴의 종말시리즈, 심판시리즈는

마틴이 세상을 떠난 후 미국과 영국에서도 전시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 1821

 

 

이집트의 일곱번째 재앙 1823

 

 

대홍수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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