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

외젠 들라 크루아, 프랑스의 자유와 예술을 캔버스에 담다

by 아옹츄 2023. 5. 14.
반응형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 1798-1863

 

 

외젠 들라 크루아

19세기 프랑스의 낭만주의 예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1798년 프랑스의 샤랑통 생 모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명했던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는 들라크루아가 일곱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고

궁정가구업자의 딸이었던 어머니 덕에 부족함은 없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예술에 있어서는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집안의 분위기 탓에

들라크루아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연극이나 고전, 음악 등에 풍부한 관심을 가져왔고

여덟살엔 리세 앵페리알에 입학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누나의 집에서 얹혀살다

1815년 경, 숙부의 소개로 유명한 화가였던 게랭 남작의 제자가 됩니다

 

이듬해에는 파리 보자르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파리보자르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PSL 대학 소속 순수미술 전문 명문 그랑제콜 이고

프랑스 최고의 미술대학교중 하나로 손꼽히는, 순수 미술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명문학교로 평가받는 학교였습니다

 

학교에 입학을 한 들라 크루아는 루브르 미술관을 제집처럼 왔다갔다 하며

제리코, 루벤스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결정적으로는

1819년 테오도르 제리코의 작품인 <메두사호의 뗏목> 을 보고낭만주의를 신봉하게 되었고 

 

이 작품에 영감을 얻어 <단테의 작은 배> 를 발표하게 됩니다

 

단테의 배 1822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 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인데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의 첫 구절의내용은 이러합니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앙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서움으로 적셨던, 골짜기가 끝나는 어느 언덕 기슭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위를 바라보았고, 이미 별의 빛줄기에 휘감긴 산꼭대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이었다

 

 

하느님의 구원과 섭리에 관해 썼고

그리고 그를 대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를 중심으로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루는 범위 또한 예술, 역사, 문학, 종교, 전설, 철학, 정치학, 천문, 자연 과학 등

인간의 지식과 삶에 연관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곡> 이라는 작품에 영감을 받아 그린 <단테의 배> 는 

화풍이 마치 루벤스와 미켈란젤로를 떠올리게 하고

깊은 비애감이 작품속에 잘 녹아들어있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들라 크루아는 캔버스 안에서 자신만의 표현이 가득담긴 붓터치와

색을 광학적으로 잘 다루었는데요

훗날 들라 크루아의 이러한 작업방식들은 인상주의 화풍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들라 크루아는 색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는데요

손재주가 좋았던 그 답게 석판 인쇄술이 취미 그 이상으로 훌륭했다고 전해집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묘사하거나, 독일의 작가인 괴테의 작품등을

석판으로 묘사했는데 이 중 주요했던 작품으로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있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작품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공감하여 이 전 <키오스 섬의 학살> 을 발표해 살롱에 출품한 후

이후에 파리에서 일어난 7월 혁명에 동참하고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흔히 프랑스 대혁명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샤를 10세가 물러나는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의 부제는 <1830년 7월 28일> 입니다.

 

프랑스 깃발을 들고 있는 여성은 제목 그대로

로마신화의 자유의 여신인 리베르타스 라고 볼수도 있지만,

프랑스를 상징하기 위해 의인화한 캐릭터인

마리안느라고 바라볼수도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 가장 흔했던 이름이었던 '마리' 그리고 '안느' 의 합성어로 마리안느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알고보면 이 마리안느, 혹은 마리안 역시 자유의 여신인 리베르타스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졌으니

어떤 캐릭터인지 감이 좀 오시나요?

 

이 자유의 여신 왼쪽편에는 소총을 든 남성이 있습니다

이는 들라 크루아 본인을 본따서 그려넣은것인데, 예전에는 작품에 본인의 모습을 본따 넣어 그린 화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다른 포스팅에도 있는 <아테네 학당> 의 라파엘로 산치오처럼 말이죠!

 

https://wongchuu1.tistory.com/entry/%EB%9D%BC%ED%8C%8C%EC%97%98%EB%A1%9C-%EA%B4%9C%ED%9E%88-%EA%B1%B0%EC%9E%A5%EC%9D%B4%EB%9D%BC%EB%8A%94-%EC%86%8C%EB%A6%AC-%EB%93%A3%EB%8A%94%EA%B2%8C-%EC%95%84%EB%8B%99%EB%8B%88%EB%8B%A4

 

라파엘로, 괜히 거장이라는 소리 듣는게 아닙니다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 입니다. 1483년 3월 28일, 우르비노 공국의 궁정화가인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나 11세에 당대 이름을 날리던 페루지노의 공방에 들어가

wongchuu.com

 

 

 

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는 마리안느 옆에 있는 아이가 보이시나요?

저 아이는 프랑스 소설가인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메지레발의 가브로슈의 모티브라고 알려졌습니다

 

이 그림으로 들라 크루아의 명성은 전 프랑스에 뻗어나가게 되고

들라 크루아는 프랑스의 1970년대,

100프랑 지폐에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무명에 가까웠던 들라 크루아를 슈퍼스타로 만든 그림이기도하고

오늘날까지 많은 작품과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하기도 했습니다.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가 수록된 앨범의 커버가 바로 들라 크루아의 이 그림이라는거

나중에 음악 들으시면서 확인해 보세요!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들라 크루아의 팔레트는 프랑스의 위대한 팔레트 입니다

그만큼 풍부한 색채를 사용한 화가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들라 크루아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것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