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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 클로드 모네 그리고 수련

by 아옹츄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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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미술계의 대표적인 작가

클로드 모네

 

모네는 1840년 프랑스의 파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캐리커처 그림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서
주변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기도 했습니다.

 

 


생계를 이어 나갈 만큼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가수였던 어머니는 모네를 예술적으로 많이 지지해 주었습니다.

 

후에 모네는 자연광에 대한 묘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어린 시절 만난 네덜란드의 화가인 요한 바르톨르 용킨트를 알게 되면서
그에게 공기 중에 있는 빛을 포착해 내어 그리는 기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용킨트는 모네에게 예술가의 눈을 키워준 스승으로 훗날 모네는 
용킨트를 가리켜 진정한 거장이라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모네가 군대에 징집되면서 알제리에 복무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전역하게 되는데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 모네는 
샤를 글레르 밑에서 여러 유명 화가들과 어울리며 함께 공부하게 됩니다.

 
얼마 후 모네는 애인이자, 자신에게 예술적 영감을 안겨주던 
카미유 피사로와 결혼을 하게 되며
가족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 후 일어난 전쟁으로
파리에서 런던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런던에서 영국의 젊은 화가들과 새로운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색채에 관련한 표현력이 업그레이드 되게 됩니다.

전쟁의 끝자락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 모네는 
무명 예술가들을 모아서 무명 예술가 협회를
창설하게 되는데, 이 모임이 현 인상주의의 모태가 되게 됩니다.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모네는 '인상주의' 개념 자체를 만들어 냅니다.

 


1874년 4월에 열었던 앵데팡당 전에서

<인상, 해돋이> 라는 작품을 출품하게 되는데
이 인상, 해돋이라는 작품은 모네의 대표작이 되었고 

훗날 인상파의 기원이 된 그림으로 남게 됩니다.

 

 


이 전시를 관람했던 비평가는 인상, 해돋이에 대해 악평하기 위해
인상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고
꾸준한 작품을 출품하고 전시하며 모네는 인상파의 지도자로서 우뚝 서게 됩니다.


모네의 작품을 후원하던 미술품 수집가 에르네스트 오셰데와 그의 아내 앨리스는
모네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하지만 후원자였던 오셰데가 갑자기 불어닥친 경기의 불황으로 인해 

가진 재산 모두를 파산하게 되고 급기야는 벨기에로 잠적을 하게 되자 

오갈 곳 없어진 오셰데의 아내인 앨리스가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모네의 집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이듬해에 모네의 아내가 사망하게 되자, 앨리스와 모네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모네는 노르망디의 지베르니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지베르니의 여름 사진

 


모네는 젊은 시절부터 내가 나중에 큰돈을 벌게 되면 지베르니에 꼭 집을 얻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그 꿈을 이뤄낸 것입니다.
후에 그의 후원자였던 오셰데의 사망 소식을 들려오자 
앨리스와 모네는 재혼합니다.

모네는 한가지의 주제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리는데

대표적으로 '수련' 이 있습니다.

 

 

 


모네는 왜 수련을 그렸을까?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습니다.


모네는 지베르니로 이사한 꿈을 이룬 후, 정원사를 두고도 자신이 직접적으로 정원
관리에 힘쓰는 등 정원을 꾸미는데 많은 정성을 쏟았습니다
현재도 프랑스에 모네의 집과 정원과 연못을 만나볼 수 있는데
모네는 자기 집 앞 연못과 수련을 같은 구도임에도 다른 색채와 시간과
계절이 변해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수련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그렸지만
모네의 수련은 같은 대상에 대해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습니다. 

 

 

 


수련이라는 주제로 그려진 모네의 그림은 약 250여점으로 
그 양이 방대해 많은 메이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이 가장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뉴욕의 MOMA, 시카고의 시카고 미술관, 도쿄의 후지 미술관, 영국 국립 미술관도
수련의 연작을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수집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사후에 국가에 기증하게 되면서 국립 현대미술관에 한점이 걸려 있습니다.

모네가 고집했던 연작의 형식은 연작 속에서 한 대상을 보고도
빛이나 계절에 의해 이전 작품과 다름을 보여줌에 있었습니다. 

 

Haystacks at Giverny 1884

 

 


그의 연작으로는 「건초더미」와 「루앙 대성당」 「포플러 나무」 「수련」 등이 있습니다. 

 

모네의 연작이라는 작업방식은
후에 칸딘스키나 몬드리안과 같은 예술가들을 거쳐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하나의 전시 양식으로서 남게 되었습니다.

 

 


모네의 말년에 모네는 눈이 좋지 않아 고생하게 됩니다.
온종일 빛을 보며 작업했던 탓에 시력에 심한 손상을 입게 되었고
나날이 심해지는 백내장 증상으로 인해 오랜 시간 작업이 힘들게 되었고
중간중간 쉬지 않으면 힘들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때문에 눈 수술을 두 번이나 받게 됩니다.


점점 더 악화하는 눈 상태로 그려낸 그림은 모네 집 앞 정원의 연못이었습니다.
연못 위 물의 표면 위에 비친 하늘과 나무, 물속 안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모네는 86세 지베르니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이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습니다.

모네가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걸고 그려낸 수련 그림은
높이가 2m에 이르고 총길이가 87m나 되는 거대한 수련 연못의 표면을 그린
이 그림은 모네의 사후 오랑주리 미술관에 설치되게 됩니다.
거대한 크기의 그림 속에서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모네 정원 앞 아름다운 연못 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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