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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엔니오 모리코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의 거장 part.1

by 아옹츄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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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알아볼 예술 인물은

영화 음악과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그 이름

엔니오 모리코네 (Ennio Morricone) 입니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1928년 이탈리아 로마의 트라스테레베에서 태어났고

2020년 7월 6일, 향년 91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이자, 오케스트레이터, 편곡가, 프로듀서까지

영화음악과 클래식, 재즈, 팝과 록 장르를 자유롭게 오갔던

현대 영화음악의 거장, 20세기 전후 작곡가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말 그대로 음악의 거장으로 불립니다.

 

미국 국적의 존 윌리엄스와 함께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팬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어린시절은 늘 음악과 함께였다고 합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버지는 나이트나 댄스클럽 같은 곳에서 연주가로 활동했고

프로페셔널 트럼펫 연주가였던 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엔니오 모리코네는

자연스럽게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고

트럼펫과 음악에 관련된 기타 지식들과 이론들을 아버지에게로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여섯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했는데

단순한 아이들 수준의 작곡 수준이 아니라 이미 아홉살이 되던 해에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서 트럼펫 개인 레슨을 받을 만큼, 음악에 관련해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아플땐 어린 엔니오가 아버지의 빈 자리를 대신해 클럽에 가서

연주를 대신 해 줄 정도였다고 하니,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시나요?

 

열 네살이 되던 해엔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트롬펫과 음악 전공 과정을 훌륭하게 이수했고

엔니오의 작곡을 지도했던 교수님인 20세기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프레도 페트라시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중2병이 찾아올 틈도 없이 엔니오의 10대엔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로마에 무차별 폭격하는 독일의 폭격기들에 의해 처참하게 부서진 도시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괴로웠던 굶주림 등

처절하고 고통뿐이었던 당시의 경험은 엔니오의 머릿속에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이후에 엔니오가 만드는 음악과 작곡한 작품들속에도

자주 반영이 되었습니다.

 

트럼펫을 연주해 학위를 딴 뒤 음악원을 졸업한 엔니오는 작곡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작곡과에 재입학을 한 뒤

계속해서 작곡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갑니다

 

보수적이었던 클래식계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 작곡공부를 한다는 것은 금기를 어긴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엔니오는 계속해서 연주와 작곡 공부를 병행해나갑니다

 

끈질기게 공부를 한 후 두번째로 음악원을 졸업한 엔니오는

1955년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하지만

젊은 예술가가 감당해 내기엔 힘든 현실의 벽 앞에

엔니오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힘든 나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 후 결혼을 해 큰 아들을 얻으며 엔니오는 더이상 경제적인 힘듦을 참을 수 없게 됩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 꿈 꿨던 자신의 작곡방향으로는 부를 축적할 수 없게 되자

다시금 순수음악, 절대음악쪽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그러던 중 로마의 한 음반사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들의 곡을 편곡해주는 작업을 맡아 하게 되고

편곡을 하는 작업을 하며 어려운 생계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수백곡들의 노래를 편곡하는 다작을 한 엔니오는 이를 통해 대중음악에 대한

경험도 많이 쌓게 되고, 방송국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기도 합니다

클래식에 대한 열정을 가슴 한켠에 숨긴채 활동하기에 급급했던 엔니오는

자신이 작곡한 협주곡을 직접 지휘하며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본인은 늘 편곡가 보다는 유명한 작곡가로 알려지길 원한 엔니오는 주변에 자신의 이름을 숨긴채

편곡가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수 많은 히트곡들을 내게 되면서

훌륭한 편곡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던 세르조 레오네와 작업을 같이 하게 되는데

황야의 무법자 라는 작품의 음악을 맡은 엔니오는

이 영화를 시작으로 영화 음악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B급 영화로 불리기도 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영화였지만

영화감독인 레오네와 모리코네는 둘 다 같은 로마출신이고

2차대전의 공포와 어려움을 함께 경험하고 이겨낸 공통점으로 감독과 음악감독의 관계 그 이상의

형제애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20만 달러라는 적은 돈으로 만든 황야의 무법자는 극장수익으로 70배가 넘는 대히트를 치며

저예산 영화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냅니다

 

황야의 무법자로 인연을 맺은 둘은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석양의 갱

원스어폰어타임 인 아메리카 라는 작품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세르조 레오네와 함께 흥행을 이끈 황야의 무법자 영화의 테마 곡은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가 한번은 들어본 듯 한 느낌이죠?

하모니카나 트럼펫, 휘파람이나 채찍 소리가 섞인 이 음악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맥시코 사막의 어느 한 공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https://youtu.be/HjjDOdaFZg0

 

 

이 후 여러 작업물들을 통해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불리던 장르음악을 섭렵 한 엔니오는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가 쇠퇴한 후에도 

영화음악가로 엄청난 명성을 이어가면서 

헐리웃 영화 음악 작업을 도맡아 활동했습니다

헐리우드 진출 후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수상엔 번번히 실패를 했던 엔니오는

영국출신 감독 롤랑 조페의 미션 이라는 영화에 영화음악가로 참여하게 되면서

엔니오 하면 떠오른 음악을 만들게 되는데

 

바로 영화 미션의 테마곡인 On Earth as It Is In Heaven (지상에서도 천국에서와 같이) 입니다.

미션 영화 자체가 한국에서 개봉했을때도 엄청난 흥행반열에 오르기도 했었고

칸영화제에서도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촬영상을 받는 등 전세계 적으로 유명했지만

특히나 영화와 잘 어울렸던 엔니오의 이 곡은

한국팬은 물론, 전세계의 영화음악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곡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https://youtu.be/TqVUw9Ngm4c

 

The Mission 1986년 작품 OST인 Gabriel's Oboe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미션의 메인테마인 가브리엘 오보에는 미션이라는 영화가 개봉한 후

영화의 명성을 뛰어넘은 음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8세기 예수회 선교사와 남미의 원주민들의 실제 있었던 일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인 미션의 테마곡을 작곡하면서

엔니오 모리코네는 영화의 배경이 된 역사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으며

선교사들의 희생정신에 대해, 그리고 그 숭고함에 대해, 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https://youtu.be/V-m5u0OFF_E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버젼에는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독백이 나왔다고 합니다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 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자는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자의 기억속에 남기 때문입니다."

 

라는 독백이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당시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정치적인 상황, 우리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희망과 염원등이 합쳐져 네차례나 재개봉 하면서

국내 팬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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