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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술계 역사상 가장 성공한 화가, 루벤스

by 아옹츄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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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역사상 가장 성공한 화가, 루벤스


"유명해지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가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돈이 없어서 담뱃갑에 그림을 그린 우리나라의 작가 이중섭을 예로 들 수 있고
반 고흐나 모딜리아니도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웠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과는 반대로 평생을 부유하게 산 예술가도 존재합니다
일평생을 부유함과 여유로움속에 살고, 죽어서도 그 공을 인정받아 대우를 받는 화가.
역사상 가장 성공한 미술가로도 불리우는 이 예술가는
독일 태생으로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벨기에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미술계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가장 성공한 예술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거대한 성을 소유 했으며, 부동산 투자도 늘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루벤스의 어린시절, 루벤스는 독일에서 벨기에로 옮겨 14살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림을 배우던 초기에는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을 
모작하여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주로 모작하여 그렸으며 
색감에 있어서는 틴토레토와 라파엘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로 인물과 성경, 신화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루벤스 특유의 힘있는 색채와 입체적이고 아름다운 구도로 
루벤스의 그림은 왕족들과 귀족들 그리고 수집가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페인과 잉글랜드에서는 기사작위를 수여받기도 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왕실로부터 왕실 화가로 임명 받기도 하고
루벤스 본인은 외교관으로서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위해 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으로 많은 돈과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루벤스는 더욱더 유명해지기 위해서
본인의 그림을 그려 판매함과 동시에, 다른 작가의 그림을 사들여 
재 판매를 하는 셀링업도 겸업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유화작품은 3000여점에 이르는데 그의 63년 생애 동안 매년 70점
이는 20살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달 여섯점은 그려야 나올 수 있는 
작품의 수가 되는데, 한 화가의 평생 동안의 작품수가 200여점을 넘기지 않는다는걸
생각하면 루벤스의 작품 소화량은 어마어마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의 크기도 또한 거대했기에 루벤스의 작품 소화량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해서 알아보니, 루벤스는 많은 후원자들의 물심양면 지원아래
자신의 화실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며 여러 화가를 고용해 
화가마다 자신있어 하는 분야로 세분화 하여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리게 하도록 했습니다. 이로인해 효율성은 극대화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모든 마지막 단계엔 루벤스 본인의 시그니처 사인이 들어갔습니다.
그림을 그릴때 제자들의 도움을 받는것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일반화가 된 당연한 관례였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에 관한 저작권에도 철저해서
죽을때까지 생활의 궁핍함 따윈 없었다고 합니다.


유럽 곳곳에 공장화 된 본인의 공방을 두고 많은 문하생들을 굴려 다작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인해 돈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살아생전 악덕 고용주로 불리우기도 했다고..
다작을 한 화가지만 그림의 좋은 퀄리티로 인해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경매에 루벤스의 그림이 나오는 족족 고가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2002년 소더비 경매 서양화 부문에서 가장 최고가에 거래된 기록도 바로 루벤스의
작품인 <유아 대학살> 입니다.
케네스 톰슨에게 당시 7620만 달러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루벤스는 우리나라에서도 방영이 된 플랜더스의 개 에서
주인공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 본 그림인 
<십자가에서 내리심> 이라는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으로 

교회 제단을 위해 그린 제단화 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내리심을 그린 배경엔 긴 이탈리아의 유학기간동안 얻은 경험으로
인간의 신체를 완벽히 그려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유학기간동안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작품을 주로 그리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주로 모작했고 카라바조의 작풍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루벤스는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도시의 성들을
삽화로 그리는 작업을 하기도 하였고 발리셀라의 산타 마리아 교회를 위해
제단화를 그려주기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작품들로 루벤스의 그림은
이탈리아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유학기간동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인 라오콘과 그의 아들 이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가 많이 좋아했다고 전해지며 라오콘상을 반전시켜 십자가에서 내리심을 그렸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루벤스는 대부분의 노년기를 안트레베르펜에서 보내게 되는데
노년에도 세계 여러 각계 각층의 고객들에게 작품을 그려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년에는 개인적으로 풍경화를 많이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림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640년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루벤스의 나이 62세 였습니다.
통풍은 유전적인 요소도 크지만, 식습관에 의해 결정이 되는 병이기도 한데
당시 통풍은 '부자들이 걸리는 병' 으로 알려져 사망 원인 또한
부유한 예술가인 루벤스의 삶을 많이 반영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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