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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20세기 미술계 최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by 아옹츄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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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최고의 천재 파블로 피카소

 

 

20세기 가장 유명한 화가로 손꼽히는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의 말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는 미술학교의

교사로 활동한 화가였고,

피카소는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았습니다.

 

피카소의 어린 시절, 피카소는 말문이 트일 때쯤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정작 또래에 비해 말하는 것이나 읽기 쓰기를

어려워할 만큼 학습 능력이 저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는

또래에 비해 뛰어난 실력으로 두각을 보였고

 

열네살에 바르셀로나로 거처를 옮긴 피카소는

아버지가 일하던 라코루냐 미술학교에서 

미술을 배웠습니다.

 

피카소가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려낸

<첫 영성체> 1896作 는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활동하던 유명한

거장 화가들의 그림 기법을

완벽히 습득해 표현하였다는

찬사를 듣습니다.

학교에 다니며 피카소는 여러 미술전에서

수상을 할 만큼 뛰어난 그림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피카소의 열다섯 살에는

마드리드를 나와 산페르난도 왕립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교과 과정에 만족하지 못한 피카소는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명화를 감상했고
특히나 그레코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관학파의 영향을 벗어나게 된 

피카소는 당시 파리의 술집을 근거지에 두고

세기말의 풍속을 그리던 로트레크와

스텐렌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파리로 넘어가게 됩니다.

 

파리로 넘어간 피카소는 몽마르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친구들 무리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때 피카소가 르누아르나 모네

피사로 등의 그림을 접하게 되었고

고갱의 원시주의나 고흐의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피카소는 머물던 파리와 아버지가 있는

바르셀로나를 오고 가면서

그 당시 사회의 사람들, 노인과

고독한 사람들, 노숙자와 고독한 인간상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담아냈습니다.

사회의 이면을 그려냈다고 해서

풍자로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려내는 대상들에 대해

진지하고 충분한 공감을 가지고

그려냈습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게 된 피카소는

아방가르드 미술가, 작가들의 모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피카소 활동 초기에 제작했었던 

판화들이나 회화 그리고 조각품들은 

 

 

청색 시대 (1901~1904)

장미 시대 (1905~1907)

원시 시대 (1908~1909)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 (1908~1912)

종합적 입체주의 시대 (1912~1913) 

 

 

으로 나뉘게 됩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들의 대부분은

음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청색의 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수척하면서도 길게 표현된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이 특징입니다.

 

이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 바로

1903년에 만들어진 <비극> 이라는

작품입니다.

 

 

또 같은 해인 1903년

파리에서 함께 친구로 지냈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가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면서 그린 <인생> 이라는

작품에서는 혼란스러운 피카소의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었다고 평가 받습니다.

 

청색의 시대의 피카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림질 하는 여인> <늙은 유대인> <애정>

등이 있습니다.

 

 

장미 시대의 특징은

오렌지색 색조핑크색 색조가 두드러진다는

점인데,

서커스에 흥미가 있던 피카소가

<공을 타는 소녀>

1905년 작품 <곡예사 가족>

에서 처럼 광대나 서커스 단원들이나 곡예사가

등장합니다.

무대 위에서의 곡예사나 광대들의 모습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의 보이지 않던 그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1913년에 출판된 열 여섯점의

유명한 동판화인 <살탐방크> 의 제작 시기도

대략 이 무렵이었습니다.

아주 섬세한 선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원시 시대 작품에는 

고대 이베리아의 조각들이나 

오세아니아 미술이나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1907년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 이 있습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을 묘사할 때

각이 지게 묘사를 했으며, 이 작품은 훗날

입체주의로의 전환을 시작하게 하는 작품이 됩니다.

 

피카소는 독특한 기법과 양식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신문이나 헝겊 등을 콜라주 기법으로

그림 위에 덧붙이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고

입체주의 조각들에선 3차원의 물체들을

그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공간적인 순서들을 반대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독창적인 그의 작품만큼이나

그는 기존에 있던 원작을 새롭게 해석해

피카소 그 만의 작품으로 그려내기도 했는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원작을

피카소의 스타일로 해석한

1957년 작품 <시녀들> 이 대표적입니다.

미술계 선배들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표현해내었습니다.

 

 

드로잉과 회화 연작을 통해

전쟁에 대한 공포와 아픔에 대해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마드리드에 위치한 소피아 국립 미술관에 보관되어있는

<게르니카> 가 있습니다.

 

게르니카 (1937) / 전쟁의 공포와 잔혹성, 그리고 고통을 담아낸 작품

 

게르니카라는 작품은

피카소가 프랑스에 살고 있던 즈음에 

스페인에 내란이 발생하게 되는데

피카소는 스페인 정부에 작품 의뢰를 받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 의뢰를 거절했고

후에 독일의 비행대가

스페인의 소도시인 게르니카를 폭격하게 되면서

사망자가 1600명에 이르는 참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피카소는 이 참사를 소재로

파시스트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려

게르니카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게르니카는 피카소가 있던 파리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을 돌며 전시가 되었고

그 후에 뉴욕의 근대 미술관에 소장이 되게 되는데

스페인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반환해 달라는

피카소의 부탁에 의해

피카소의 사후 1981년에 스페인으로 옮기게 됩니다.

 

피카소는 도기의 제작과 조각에도 관심이 많아

작품을 만드는데 이르렀고

이 분야에서도 피카소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많은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 1951년 작품과

<전쟁과 평화> 1952년 작품 등을 만들며

시대를 이끄는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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