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

끝나지 않은 마이클 잭슨 이야기 두번째

by 아옹츄 2022. 11. 10.
반응형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예인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의 유명세가 더해가면 더해갈수록 

언론과 대중은

마이클 잭슨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마이클 잭슨을 향한 언론의 어긋난 관심은 점차 심해졌는데

이것은 곧 자극적인 거짓 보도로 이어졌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노화를 늦추기 위해 

고압 산소 체임버에 자고 있다며

마이클 잭슨을 찍은 사진을 보도한 타블로이드는 

화상 치료차 찾은 병원에서 전문의와 함께 

산소 체임버를 보고 흥미를 느껴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이 언론으로 넘어가 

마이클 잭슨이 괴짜 같은 짓을 한다, 

기괴하다며 기사를 써냈습니다.

 

이 외에도 타블로이드는 

 

마이클 잭슨이 남자와 결혼하려 성전환 수술하려 한다

침팬지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슈퍼스타의 행보를 밟던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를

무자비하게 깎아내리기 시작합니다.

 

 

마이클 잭슨이 백반병을 앓기 시작한 후 

피부색이 급격하게 하얘지자 마이클 잭슨을 괴롭히고

악의적인 기사를 쓰던 언론들은 

마이클 잭슨이 백인이 되고 싶어서

피부를 하얗게 하는 시술을 받고, 표백하여

백인이 되려 한다고 거짓 보도를 다투어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는 거짓입니다. 

 

공식적으로 백반증을 진단받았고, 

CF를 찍던 중 일어난 사고로

입은 화상이 백반증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보는데

 

기존에 백반증을 앓고 있던 사람이

외부의 자극받으면 악화하는 속도가 빨라지는데

CF를 찍은 후 백반증이 심해진 것이 사실이라 

잭슨 입에서 나온 공식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다들 이 이유가 가장 근접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언론이 이토록 마이클 잭슨을 괴롭히고 

루머를 생성해 내는 이유에는 

돈 이라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이클 잭슨과 아주 잠시 잠깐의 접촉이 있었던 사람일지라도 

언론에서 돈을 주며

인터뷰해달라고 부탁하게 되면 

이들은 돈을 위해 그들의 관점에서 주장하며 

기꺼이 잭슨의 삶을 망가뜨리는데 동참하게 됩니다.

 


이쯤 마이클 잭슨은 Bad 앨범을 내게 됩니다.

 

 

https://youtu.be/Sd4SJVsTulc

역시나 발매 후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찍게 되고, 

수록인 다섯곡이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3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 기록은 

역사상 10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됩니다

엄청난 음반 판매량과는 상반되게

그 해 잭슨은 그래미상을 단 한 개도 수상하지 못합니다.

 

 

 

잭슨은 첫 솔로 투어의 시작으로 일본을 선택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첫 번째 월드투어인 

Bad Tour는 

투어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게 됩니다

440만명이 넘는 팬들을 15개국에서 만났습니다.

 

웸블리를 가득 채우는 티켓 매진을 

7회 연속으로 끌어냈으며 

이 일곱번의 콘서트로 총 504,000의 관객을 수용하며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 기록되었습니다.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암표상들이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잭슨의 공연 도중에 수많은 관객들이 

혼절, 다치는 상태가 이어지자
안전상의 논란이 이야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991년 마이클 잭슨은 

Dangerous를 발매하게 됩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6위에 오르게 되는데 
인종 차별을 뛰어넘자는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Black or White
빌보드 차트에서 7주간 1위를 놓치지 않았고 

 

https://youtu.be/F2AitTPI5U0

 

Black or White 뮤직비디오는 

TV 역사상 가장 많이 본 뮤직비디오로 

기네스북에 등재됩니다.

마이클 잭슨이 Bad 투어 이후로 

새 투어를 시작하였는데,

새 투어를 한 이유는 바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어린이들을 위한 재단 기금 마련을 위해서라고 알려졌습니다.

 

기부와 자선에 늘 관심이 많았던 마이클 잭슨은 

본인의 Heal The World Foundation을 설립합니다
이는 자선단체로, 전쟁으로 피해를 받은 지역과 사람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치유를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잭슨의 끊임없는 선행과 자선에 대한 관심을 높게 산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잭슨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잭슨은 에이즈에 걸린 환자들을 위한 

HIV 연구를 위한 곳에 돈을 지원했고

이 당시의 대통령인 빌 클린턴도 

잭슨의 자선 행보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1993년 잭슨은 

12세 남자아이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데뷔 이후로  쌓아왔던 명성에 

큰 데미지를 입기 시작합니다.

 

아동 복지국이 잭슨의 집인 네버랜드를 

압수 수색하고 조사하지만 

잭슨은 끝까지 본인의 무죄를 주장했고 

이 사건은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잭슨을 조사했지만

어떤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조사하는 도중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면증을 앓았던 잭슨은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치의였던 의사는 

잭슨이 잠을 청하지 못하고, 

통증으로 괴로워했기에 약물을 주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앨범을 내고, 자선 공연하고, 

세계의 기아 문제나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자신이 가진 영향력으로 선한 행보를 보여왔지만

 

또다시 성추행 혐의로 재판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곧 무죄판결로 끝이 납니다

 

재판 이후 네버랜드가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일부 폐쇄가 되고

잭슨 또한 거의 은둔 생활을 했고

2009년 3월 런던에서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6월, 캘리포니아의 자택에서 

마이클 잭슨은 사망하게 됩니다.

 

 

사인은 프로포폴 과다 투여와 

벤조다이아제핀 중독이라고 발표되었습니다

잭슨은 사망했지만 

여전히 잭슨을 편히 놓아주지 못했습니다.

 

사인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과 억측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부검 결과 잭슨은 사인의 이유를 제외하곤 

건강한 미국인의 평균적인 자태였다며

언론의 말도 안 되는 사망 소식에 일침을 날립니다.

 

 

 

 

 

사망 70일 뒤인 9월 31일 

미국의 공원묘지에서 드디어 쉬게 됩니다

마이클 잭슨의 사후, 마이클 잭슨은 그래미 어워드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게 됩니다

마이클 잭슨은 본인이 장르 그 자체인 뮤지션이었습니다.
인종과 차별을 뛰어넘은 음악과 예술을 하였으며, 

그의 삶 속의 선한 영향력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는 뮤직비디오 산업을 발전시키고,

관련한 모든 분야의 부문에 공을 혁혁히 세웠고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선물했습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는 아직도 전설 그 자체로 

현재 활동하는 많은 뮤지션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시대의 아이콘인 마이클 잭슨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뮤지션이라 주저 없이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오직 마이클 잭슨에게만 king of pop 이란 수식어가 붙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살아서는 언론과 대중에게 고통받기도 했지만

그가 남긴 아름다운 음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었고, 또 치유해 주었으니

이제는 부디 고통 없는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기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