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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앙리 마티스, 독특한 화풍 그리고 야수파

by 아옹츄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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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늘 손꼽히며

야수파의 창시자로 유명한 앙리 마티스

(본명: 앙리 에밀브누아 마티스)

마티스는 1869년 프랑스의 르샤토캄프레시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파리로 넘어가서

법학을 전공하지만, 병에 걸리게 되고 요양을 하는 동안에

어머니가 사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취미 생활로 그림을 그렸던 마티스는 그림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수 없었고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사 등을 하는 등 열심을 다해 미술을 파고 듭니다.

그사이 귀스타브 모로의 눈에 띈 마티스는

파리 소재의 파리국립 미술학교에 들어가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모로에게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습니다.

 

 


마티스의 아버지는 마티스의 생계가 걱정되어 고정 수입이 존재하지 않고

미래가 불분명한 화가가 되는것을 반대했지만
마티스는 끝까지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며 그림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마티스는 세잔풍을 도입해 구성적인 포름 그리고 어두운 색조로 전향해

그 폼을 유지했고

한동안 어두운 색조를 띠는 작품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1904년에는 시냐크, 크로스와 함께

생트로페에 체재하게 되면서

신인상파 풍을 밭아 들여

자신의 화풍에 녹여내었습니다.

이 해에 마티스는 

이전부터 친분관계를 유지하던

피카소와 마티스는 

서로 자주 어울리면서 

각자의 작품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피카소-마티스 한 1+1처럼 묶어서
부를만큼 그들은 20세기
미술계의 폼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이후 마티스는 피카소와 드랭,

블라맹크와 함께

20세기 회화의 혁명이자 새 지평을 여는

야수파 운동에 참가 하게 됩니다

야수파 운동은 

강렬한 색채와 개성을 표현했고

강한 붓터치와

대상을 간략하게 표현해낸 추상화 느낌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마티스는 1차 세계 대전 후에

주로 니스에 머물렀으며

1911년과 1913년 약 두번에 걸친

모로코 여행 경험을 통해

이전 포브시대와 다른 장식적인 

현란하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했고

아라베스크나 꽃무늬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구도와 구성으로

독특한 그만의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그렸던 무생물들과

어두운 색조를 버리고

자연광의 느낌을 살렸고

활기 띤 그림과 밝은 색조를 사용하였습니다.

앙리스의 이 시기 작품으로는

'목련꽃을 든 오달리스크' 가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나요?"
"앙리 마티스가 되고 싶습니다."
-앤디 워홀

 

 

 

 



 


마티스의 후원자 중

세르게이 슈추킨이라는

후원자가 있는데

러시아에 대저택을 가지고 있고

부유한 실업가로 활동하면서

슈추킨은 주기적으로 파리를 방문해서

마티스 작업실에 있는

모든 작품들을 담아 배에 싣고

러시아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슈추킨은 마티스에게

자신의 저택에 춤과 음악이라는 주제로

벽화를 그려주길 의뢰했습니다.

마티스는 이 벽화작업을 위해서

모스크바로 여행을 떠났고

많은 유럽의 도시들을 방문하여

영감을 얻으려 했습니다.

 

1941년에는 마티스가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게 되면서

마티스는 그림을 그리기 조차

어려워지게 됩니다.

 

마티스의 말년에는 

색종이를 이용해서 그 형태를

간소화, 단순화 한 작품들을

여러점 남기기도 했습니다.

마티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카루스가 그 작품들중 하나 입니다.

 

이카루스는 신화에 나온 이카루스를

모티브 했다고 전해집니다.

 

동굴을 빠져나와 깃털로 만들어진

날개를 밀랍으로 고정해 탈출을 감행한

이카루스가 욕심을 부리고 

비행을 즐기다가

태양 가까이로 날아가게 되고

밀랍으로 고정해둔 날개가 녹아버리게 되어

추락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마티스는 이 추락하는 장면을 

작품에서 표현했습니다.

 

이카루스 작품속의 파란 배경은

이카루스가 날던 파란 하늘을 표현했고

사람의 형태를 한 검은색 존재는

이카루스를 표현해 냈으며

가슴에 있는 빨간 점은 

인간의 심장을 표현했다고 전해집니다.

 

여담으로 이카루스로 보이는 검은 사람은

사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공군의 비행 조종사 라는 말도 전해지지만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마티스의 작품 1911년 작 <Collioure en ao&ucirc;t>

 

 

 

 

마티스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관절염의 악화로 인해 심한 고생을 했는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손에 붓을 쥐고 있는것

조차도 힘겨워 져서

나중에는 손에다가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마저도 힘겨워지고 쉽지 않자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붙이는

'콜라주'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병색이 짙어짐에도 불구하고

샤펠 로자이르 드 뱅스 예배당의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자처해

작품활동에 몰두하게 되는데

간병인이나 주변에서 마티스의 나이와

건강상태를 고려해 계속되는 작업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으나

마티스는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것이라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일 했다고 합니다.

1952년이 되던 해에

마티스는 이 작업을 마무리 하고

쓰러지게 됩니다.
작업을 끝낸 뒤 

"내 마지막 작품이 이로서 끝났다"

라고 지인들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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